* 하이큐 카와니시 타이치 중심

*앵스트

*W.망( @10mang04)

 

 

거미를 죽였다.
며칠 전부터 날 괴롭히던 거미였다. 화장실에 갈 때마다 신경쓰이게 한 '그것'은 오늘 3시쯤 다시 마주했다. 새벽에는 보통 텐션이 다운되는 지라 거미를 놓아 줄 정도로 기분이 썩 좋지 않던 나는, 세면대 맨 아랫두리에서 위로 올라오려고 안간힘을 쓰던 거미의 다리부터 시작을 해서 몸통 전체에 차가운 물을 끼얹졌다.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치는 모습을 지켜보며 배수구 안으로 완전히 빨려 들어갈 때 까지 물을 계속 부었다. 마침내 거미가 완벽하게 사라진 것을 확인한 후 방으로 들어와 헤집어진 이부자리 사이로 들어가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려 덮은 뒤 기도를 했다.

[ 좋은 곳으로 갔길, 더 예쁜 무언가로 태어나길 ]

 

이불 속에서 맞잡은, 텁텁했던 두 손 사이로 땀이 송글 송글 맺혔다.

 

 

돌아오다

       망(@10mang04)

 

 

창문 앞에 달아놓은 블라인드 사이로 빛이 스며들어와 제 얼굴을 톡톡 두드렸다. 눈꺼풀위로 내려오는 햇살에 눈을 슬며시 뜨곤 옆에서 충전을 해놓고 있었던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였다.'10시17분' 아직 12시도 넘지 않은 시간에 잠에서 깬 저에게 생활리듬이 잘 잡혔다고 속으로 칭찬해주고 있을 때 휴대폰에서 띠링하는 소리가 연달아 났다. 막 잠에서 깬 것을 광고라도 하는 듯이 붕 뜬 머리를 벅벅 긁으며 문자메시지를 확인했다.

 

[타이치 오늘 영화 어때.]

 

딱 필요한 것만 보내는 형식적인 문체에 굳이 이름을 확인하지 않아도 발신자를 알 수 있었다. 시라부 켄지로. 저와 같은 학교(학원)을 다니는 동급생 친구이다. 같이 땀을 흘리며 훈련을 해서 그런가, 저희는 다른 친구들보다 더 사이가 돈독해졌고 이제는 주말에 영화를 보러가거나 밥을 먹으러 가는 등 여가생활을 함께 즐기는 사이로 번져갔다. 어항 속에서 뻐금거리며 헤엄치는 금붕어 대여섯마리를 보면서 영화 보고 와서 물 갈아 줘야지- 같은 시시콜콜한 생각을 한다. 하품을 찍 뱉으며 화장실로 어슬렁 어슬렁 향하는 카와니시 뒤로 휴대폰 액정에는 12시까지 영화관 앞에서 만나자는 내용의 문자가 보내져 있었다.

 

***

 

 평소에도 약속에 늦는 편이 아니었지만 오늘은 약속시간보다 약 15분 정도 먼저 나와 있었다. 늘 그런 식이었다. 약속은 시라부가, 코스는 내가. 정해지기라도 한 듯 우리는 항상 그렇게 만남을 가져왔고, 나는 익숙하다는 듯이 핸드폰을 꺼내들어 어디를 가볼지 검색해봤다. 연인 사이도 아닌데 뭐 이렇게 신경 쓰면서 다닌냐고 물어본다면 애인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친구여서라고 대답할 것이다. 실제로 전에 그렇게 답했다가 보증을 잘 서줄 것이라는 대답을 들었지만 돈이 오고 가는 곳에는 선을 넘지 않을 것이기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았다.

 

약속 시간 5분 전. 제가 항상 빨리 나와 있다고 하더라도 지각은 한 적이 없는 시라부이기에 왔을 때부터 앉아있던 벤치에서 긴 다리를 왔다 갔다 했을까 귀에서 이어폰이 빠지는 느낌이 나서 고개를 들어보니 말끔히 정리되어있는 연갈색의 머리가 저를 반겼다. 오늘도 일찍 나와있었네. 뭘 새삼스럽게 물어보고 그러냐. 흔한 고등학생의 말투로 몇 마디 대화를 나누곤 조금 뒤면 시작할 영화를 보기 위해 영화관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

 

" 야 너 잘 자더라."

" 다음부터 영화는 내가 고를 거야.. 아 졸려."

 

킥킥거리며 다음 번 영화도 기대하라는 외침에 귓가에 손을 휘적이곤 화장실로 들어갔다. 영화가 끝나면 화장실에 사람이 복작거려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웬일인지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캐러멜 팝콘 때문에 살짝 끈적해진 손을 열심히 씻었다. 시원한 느낌에 기분이 좋아져 영화의 내용을 곱씹어 봤다. 그래, 분명히 처음엔 기대를 하고 갔다. 전 작품이 꽤 흥행했던 감독의 복귀작이기에 이번에도 재미있을 줄 알고 이 영화를 보자는 시라부의 말에 흔쾌히 긍정의 대답을 했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은 되돌릴 수 없었다. 살면서 이런저런 영화도 보는 거지.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다시 불필요한 생각을 접고 내용을 생각하려 하자 아까 시라부가 말 한 듯이 정말 시작한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잠이 들어버린 바람에 생각이 하나도 나지 않았다. 화장실에 살림 차렸냐고 계속 문자를 보내는 시라부 때문에 미처 기억을 다 더듬지 못하고 밖으로 나와야 했다.

 

"저기, 켄지로. 방금 봤던 영화 내용이 뭐였지?"

 

아무리 팝콘을 먹었지만 팝콘으로는 속이 차지 않는 남자 둘이었다. 우리는 영화관 근처 맛집에서 점심을 먹자고 타협을 하곤 밖으로 나왔다. 목적지로 향하던 중, 아까 잊어버리고 하지 못 했던 말을 넌지시 물었다. 뭘 잘못 씹은듯한 표정으로 저를 쳐다보기에 뭐. 하며 대꾸했다. 고개를 휘휘 저으며 대뜸 자신에게 영화 포스터는 기억이 나냐며 물어보았다. 넌 내가 그 정도로 둔감할 거 같냐. 당연히 기억나지. 번데기에서 나비가 깨어나는 거잖아.

 

 그렇게 대답하며 팔짱을 끼고 있던 두 손을 팔에 슥슥 문질렀다. 언제 생각해도 곤충이나 벌레는 싫은 법이었다. 문득 새벽에 죽인 거미가 떠올랐다. 한참 조잘대다 말이 끊긴 저를 시라부가 슥 쳐다보기에 그래서?라고 되물었다.

 

 

" 그 영화, ....잖,"

아.

점점 말소리가 멀어지고 결국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내 몸은 공중을 날아 바닥에 하염없이 떨어졌다. 뜨겁고 끈적한 것이 몸에서 흘러나오는 느낌이 들고 머리가 웅웅거렸다. 팔과 다리가 쑤신다는 느낌이 들어 이제는 붉어진 눈을 부릅뜨고 소란을 피우는 사람들 사이에서 시라부를 찾았지만 자꾸 눈이 감겼다.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고 하였지만 이렇게 빨리 그 시간이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 했다. 전신이 저릿거리며 아프던 느낌도 없어져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와 수군거리는 정도를 넘은, 그러니까 소란스러워진 제 주변을 둘러싼 행인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차에 실어졌고 아마 나의 '첫 번째 인생.' 은 거기서 마침표를 찍었을 것이다.

 끝내 너를 보지 못한 채

 

***

 

그로부터 몇 개월이 지났을까. 너는 곧잘 입었던 하복을 벗곤 춘추복 차림으로 등하교를 했다. 시간이 벌써 그렇게나 흘렀나 보다. 나한테는 느렸다면 느렸지 절대 빠른 것은 아니었는데 말이다. 그리고 나는 다시 태어났다. 비록 인간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태어났다. 내가 가장 증오하고 혐오하였던 생명체로 끊어진 목숨줄을 다시 잇는다는 것이 여간 우스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죽지 않았던 건 이렇게라도 너를 지켜보며 살고 싶었기 때문일 거라고 하루에 수십 번은 되뇌고 있다.

 

평소처럼 현관문이 여닫히는 소리가 들려오고 나는 네가 왔다는 것을 직감했다. 화장실로 들어온 너의 얼굴이 울그락 푸르락 하였다.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었니 라고 물음을 건네고 싶어도 건넬 수 없는 처지였기에 한없이 침묵을 지키고 있는 그때, 넌 갑자기 텅 빈 눈으로 날 응시하더니 샤워기를 들곤 나에게 물을 뿌렸다. 안 돼. 이러지 마. 나는 말이야, 나는 더 살고 싶어. 입으로 나갈 리 없는 문장을 외쳤다. 야속하게도 너에겐 닿지 않았나 보다. 아니 당연하지만 왠지 눈물이 났다.

 

싫어하는 것으로 다시 태어나 심지어 전생(前生)의 기억도 유지한 채 며칠을 너만 바라보았는데 너는 나에게 너무 차갑고 뜨거웠다. 배수구로 빨려 들어가기 몇 초 전. 문득 내가 죽인 거미가 생각이 났다. 그래, 너도 이런 기분이었니? 생의 끝자락에서 던지는 질문에 돌아올 대답은 없었지만 노파심에 물었다.

 

켄지로. 나는 너에게 돌아갈까?

 

***

타이치가 죽었다. 자신과 시시콜콜한 농담을 주고받던 상대가 이제는 나와 같은 세상에 살고 있지 않는다. 숨을 쉴 수 없다. 얼굴을 마주할 수 없다. 당연한 것들이 이질적인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내가 시라토리자와로 왔을 때 가장 살갑게 대해주던 사람이었다. 타이치가 있어서 학교생활에 적응했다-라는 말이 과장된 것이 아닐 정도로 우리는 가까웠다. 아니 가까웠었다. 이젠 너무 멀리 있으니까.

 

나는 너무 놀라 지켜보는 일 밖에는 할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후회가 된다. 왜 그랬지 왜 그랬어 왜 그랬냐 왜 왜 왜 왜. 밑도 끝도 없이 자신을 물고 늘어지는 질문에 괴로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좀 더 빨리 내가 대처를 했다면 그랬다면 너는 살 수 있었을까. 그렇지만 세상은 잔인했다. 자책하고 또 자책해도 너는 더 이상 돌아올 수 없었다.

 

 평소보다 그런 생각이 많이 들어 집에 들어가자마자 욕실로 발걸음을 향했다. 주 목적은 샤워였으나 거울 옆에 붙어있는 거미를 보니 거미를 무진장 싫어하던 죽은 내 친구 카와니시 타이치가 떠올랐다. 그래, 내 친구는 죽었는데 너는 살아 있구나. 아무상관 없는 거미였지만 괜스래 괘씸한 기분이 들어 샤워  기로 물을 마구 뿌려댔다.

거미를 죽였다.
죽은 친구를 떠올리게 해 날 괴롭히던 거미였다. 화장실에 갈 때 나를 신경 쓰이게 한 '그것'은 오늘 학교에 다녀온 후 마주했다. 욱하는 성격 때문에 샤워기로 거미에게 물을 마구 뿌리곤 정신을 차려보니 거미는 이미 우리 집을 떠난 뒤였다. 정신을 차리고 샤워를 끝마친 후 방으로 들어와 헤집어진 이부자리 사이로 들어가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려 덮은 뒤 기도를 했다.

[ 좋은 곳으로 갔길, 더 예쁜 무언가로 태어나길 ]

 

이불 속에서 맞잡은, 시원하던 두 손 사이로 땀이 송글 송글 맺혔다.

Posted by マ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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