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이큐 다테공 전력 60분 주제 '흉터 /  상처 "
* W. 망(@10mang04)
*후타카마후타

 

그러니까 아마 작년 겨울이었을 것이다. 중학교에서 올라와 아기 티를 벗어내지 못한 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키가 훌쩍 자란 소년에게. 그렇지만 아직 마음은 여물지 않은 소년에게 상처를 준 것이 말이다.

"후타쿠치 나 너한테 이제 관심 없다."

당신이 아무렇지 않게 입에서 뱉어내는 문장 하나가 제 가슴을 도려내고 더 괴롭게 쑤셔댔다. 원래 넌 안될 거였어라고 비웃는 거 마냥 지독하고 끈질기게. 처음엔 당황했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카마사키상? 갑자기 뜬금없이...

그러자 그가 말했다. "아니, 뜬금없는 거 아니야. 전부터 생각하고 있었어."
과연 언제부터 생각하고 있던 걸까. 전에 구미 젤리를 사달라고 가게에서 졸랐을 때? 하지 말라고 했는데 계속 장난을 쳤을 때?
"그런데 차마 너한테 말은 못하겠더라. 지난 시간 동안 고마웠다. ..내일 학교에서 보자."
자기 할 말만 하고 홀연히 떠나서 사람 외롭게 만드는 재주는 정말 대단하다고 그 잘난 얼굴에 쏘아주고 싶었다. 사람 손을 타지 않아 앙칼진 고양이마냥 천천히 뒤흔들고 싶었다.

그러나 정작 흔들리는 건 나 자신이었다. 자기를 등돌려 뚜벅뚜벅 걸어가는 뒷모습에 어떠한 말도 전할 수 없었다. 눈물도 흐르지 않은 걸 보니 그렇게 잡고 싶었던 생각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애정을 넘어선 감정은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나갔고 지금 나는 그때 나를 거절했던 사내와 마주하고 있다.

".. 졸업 축하드립니다. '그 일'이 벌써 작년이네요. 시간 빠르다, 그쵸?"
움찔. 분명 움찔 거렸다. 제가 '그 일'이라는 단어를 언급함과 동시에 티는 많이 나지 않았지만 두 팔에 얹은 손이 파르르 떨리는 걸 보았다. 올곧게 자신을 쳐다보던 눈동자가 잠시 다른 곳을 바라보는 것을 보았다. 그리곤 한숨 한 번. 이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너는 내가 안 밉냐? 그러게 너도 참 매정하다. 한 번쯤은 그때 왜 그랬냐고 물어볼 수도 있었고 그 당시에 나를 잡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물론이다. 밉지 않을 수가 없다. 공고에서 잘생기기로 소문난 자신이었다. 눈앞의 사내가 자신에게 고백을 해왔을 때 이 사람 미친 건가라는 생각부터 해왔던 저였는데 자기도 모를 사이에 카마사키 야스시라는 남자에게 침식되어갔다. 사소하게는 생각하는 것부터 심하게는 생활패턴까지 말이다. 그랬던 이유는 아마 제가 다른 사람에게 정을 준 적이 없어서인 것 같다. 하지만 제가 정을 쏟아준 사람은 절 떠났다. 아직 마음에서는 줄 사랑이 많이 남았다고 외치고 있었지만 애써 무시하고 다른 일에 몰두했다. 배구연습,취업준비 등등. 그래도 그 사람이 머릿속에서 잊혀지지 않으면 잠을 잤다. 꿈에서도 나는 그 인간을 잊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었다. 꼴사나웠다.

"매정한 건 카마사키상이죠. 어떻게 절 혼자 두고 그렇게 나갈 수 있습니까? 저 같았으면 근처 음식점에라도 가서 콜라 한 잔 쥐여주고 말했을 겁니다. 사람이 무드 없게.. 체육관에서 이별이 뭡니까 정말."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몇 개월이 지난 지금은 제가 먼저 사내의 곁을 지나갔다. 먼저 등을 보여줬다. 왜 그렇게 기분이 좋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복수.. 비스름한 것에 성공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상처는 소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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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큐 카와니시 타이치 중심

*앵스트

*W.망( @10mang04)

 

 

거미를 죽였다.
며칠 전부터 날 괴롭히던 거미였다. 화장실에 갈 때마다 신경쓰이게 한 '그것'은 오늘 3시쯤 다시 마주했다. 새벽에는 보통 텐션이 다운되는 지라 거미를 놓아 줄 정도로 기분이 썩 좋지 않던 나는, 세면대 맨 아랫두리에서 위로 올라오려고 안간힘을 쓰던 거미의 다리부터 시작을 해서 몸통 전체에 차가운 물을 끼얹졌다.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치는 모습을 지켜보며 배수구 안으로 완전히 빨려 들어갈 때 까지 물을 계속 부었다. 마침내 거미가 완벽하게 사라진 것을 확인한 후 방으로 들어와 헤집어진 이부자리 사이로 들어가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려 덮은 뒤 기도를 했다.

[ 좋은 곳으로 갔길, 더 예쁜 무언가로 태어나길 ]

 

이불 속에서 맞잡은, 텁텁했던 두 손 사이로 땀이 송글 송글 맺혔다.

 

 

돌아오다

       망(@10mang04)

 

 

창문 앞에 달아놓은 블라인드 사이로 빛이 스며들어와 제 얼굴을 톡톡 두드렸다. 눈꺼풀위로 내려오는 햇살에 눈을 슬며시 뜨곤 옆에서 충전을 해놓고 있었던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였다.'10시17분' 아직 12시도 넘지 않은 시간에 잠에서 깬 저에게 생활리듬이 잘 잡혔다고 속으로 칭찬해주고 있을 때 휴대폰에서 띠링하는 소리가 연달아 났다. 막 잠에서 깬 것을 광고라도 하는 듯이 붕 뜬 머리를 벅벅 긁으며 문자메시지를 확인했다.

 

[타이치 오늘 영화 어때.]

 

딱 필요한 것만 보내는 형식적인 문체에 굳이 이름을 확인하지 않아도 발신자를 알 수 있었다. 시라부 켄지로. 저와 같은 학교(학원)을 다니는 동급생 친구이다. 같이 땀을 흘리며 훈련을 해서 그런가, 저희는 다른 친구들보다 더 사이가 돈독해졌고 이제는 주말에 영화를 보러가거나 밥을 먹으러 가는 등 여가생활을 함께 즐기는 사이로 번져갔다. 어항 속에서 뻐금거리며 헤엄치는 금붕어 대여섯마리를 보면서 영화 보고 와서 물 갈아 줘야지- 같은 시시콜콜한 생각을 한다. 하품을 찍 뱉으며 화장실로 어슬렁 어슬렁 향하는 카와니시 뒤로 휴대폰 액정에는 12시까지 영화관 앞에서 만나자는 내용의 문자가 보내져 있었다.

 

***

 

 평소에도 약속에 늦는 편이 아니었지만 오늘은 약속시간보다 약 15분 정도 먼저 나와 있었다. 늘 그런 식이었다. 약속은 시라부가, 코스는 내가. 정해지기라도 한 듯 우리는 항상 그렇게 만남을 가져왔고, 나는 익숙하다는 듯이 핸드폰을 꺼내들어 어디를 가볼지 검색해봤다. 연인 사이도 아닌데 뭐 이렇게 신경 쓰면서 다닌냐고 물어본다면 애인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친구여서라고 대답할 것이다. 실제로 전에 그렇게 답했다가 보증을 잘 서줄 것이라는 대답을 들었지만 돈이 오고 가는 곳에는 선을 넘지 않을 것이기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았다.

 

약속 시간 5분 전. 제가 항상 빨리 나와 있다고 하더라도 지각은 한 적이 없는 시라부이기에 왔을 때부터 앉아있던 벤치에서 긴 다리를 왔다 갔다 했을까 귀에서 이어폰이 빠지는 느낌이 나서 고개를 들어보니 말끔히 정리되어있는 연갈색의 머리가 저를 반겼다. 오늘도 일찍 나와있었네. 뭘 새삼스럽게 물어보고 그러냐. 흔한 고등학생의 말투로 몇 마디 대화를 나누곤 조금 뒤면 시작할 영화를 보기 위해 영화관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

 

" 야 너 잘 자더라."

" 다음부터 영화는 내가 고를 거야.. 아 졸려."

 

킥킥거리며 다음 번 영화도 기대하라는 외침에 귓가에 손을 휘적이곤 화장실로 들어갔다. 영화가 끝나면 화장실에 사람이 복작거려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웬일인지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캐러멜 팝콘 때문에 살짝 끈적해진 손을 열심히 씻었다. 시원한 느낌에 기분이 좋아져 영화의 내용을 곱씹어 봤다. 그래, 분명히 처음엔 기대를 하고 갔다. 전 작품이 꽤 흥행했던 감독의 복귀작이기에 이번에도 재미있을 줄 알고 이 영화를 보자는 시라부의 말에 흔쾌히 긍정의 대답을 했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은 되돌릴 수 없었다. 살면서 이런저런 영화도 보는 거지.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다시 불필요한 생각을 접고 내용을 생각하려 하자 아까 시라부가 말 한 듯이 정말 시작한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잠이 들어버린 바람에 생각이 하나도 나지 않았다. 화장실에 살림 차렸냐고 계속 문자를 보내는 시라부 때문에 미처 기억을 다 더듬지 못하고 밖으로 나와야 했다.

 

"저기, 켄지로. 방금 봤던 영화 내용이 뭐였지?"

 

아무리 팝콘을 먹었지만 팝콘으로는 속이 차지 않는 남자 둘이었다. 우리는 영화관 근처 맛집에서 점심을 먹자고 타협을 하곤 밖으로 나왔다. 목적지로 향하던 중, 아까 잊어버리고 하지 못 했던 말을 넌지시 물었다. 뭘 잘못 씹은듯한 표정으로 저를 쳐다보기에 뭐. 하며 대꾸했다. 고개를 휘휘 저으며 대뜸 자신에게 영화 포스터는 기억이 나냐며 물어보았다. 넌 내가 그 정도로 둔감할 거 같냐. 당연히 기억나지. 번데기에서 나비가 깨어나는 거잖아.

 

 그렇게 대답하며 팔짱을 끼고 있던 두 손을 팔에 슥슥 문질렀다. 언제 생각해도 곤충이나 벌레는 싫은 법이었다. 문득 새벽에 죽인 거미가 떠올랐다. 한참 조잘대다 말이 끊긴 저를 시라부가 슥 쳐다보기에 그래서?라고 되물었다.

 

 

" 그 영화, ....잖,"

아.

점점 말소리가 멀어지고 결국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내 몸은 공중을 날아 바닥에 하염없이 떨어졌다. 뜨겁고 끈적한 것이 몸에서 흘러나오는 느낌이 들고 머리가 웅웅거렸다. 팔과 다리가 쑤신다는 느낌이 들어 이제는 붉어진 눈을 부릅뜨고 소란을 피우는 사람들 사이에서 시라부를 찾았지만 자꾸 눈이 감겼다.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고 하였지만 이렇게 빨리 그 시간이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 했다. 전신이 저릿거리며 아프던 느낌도 없어져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와 수군거리는 정도를 넘은, 그러니까 소란스러워진 제 주변을 둘러싼 행인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차에 실어졌고 아마 나의 '첫 번째 인생.' 은 거기서 마침표를 찍었을 것이다.

 끝내 너를 보지 못한 채

 

***

 

그로부터 몇 개월이 지났을까. 너는 곧잘 입었던 하복을 벗곤 춘추복 차림으로 등하교를 했다. 시간이 벌써 그렇게나 흘렀나 보다. 나한테는 느렸다면 느렸지 절대 빠른 것은 아니었는데 말이다. 그리고 나는 다시 태어났다. 비록 인간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태어났다. 내가 가장 증오하고 혐오하였던 생명체로 끊어진 목숨줄을 다시 잇는다는 것이 여간 우스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죽지 않았던 건 이렇게라도 너를 지켜보며 살고 싶었기 때문일 거라고 하루에 수십 번은 되뇌고 있다.

 

평소처럼 현관문이 여닫히는 소리가 들려오고 나는 네가 왔다는 것을 직감했다. 화장실로 들어온 너의 얼굴이 울그락 푸르락 하였다.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었니 라고 물음을 건네고 싶어도 건넬 수 없는 처지였기에 한없이 침묵을 지키고 있는 그때, 넌 갑자기 텅 빈 눈으로 날 응시하더니 샤워기를 들곤 나에게 물을 뿌렸다. 안 돼. 이러지 마. 나는 말이야, 나는 더 살고 싶어. 입으로 나갈 리 없는 문장을 외쳤다. 야속하게도 너에겐 닿지 않았나 보다. 아니 당연하지만 왠지 눈물이 났다.

 

싫어하는 것으로 다시 태어나 심지어 전생(前生)의 기억도 유지한 채 며칠을 너만 바라보았는데 너는 나에게 너무 차갑고 뜨거웠다. 배수구로 빨려 들어가기 몇 초 전. 문득 내가 죽인 거미가 생각이 났다. 그래, 너도 이런 기분이었니? 생의 끝자락에서 던지는 질문에 돌아올 대답은 없었지만 노파심에 물었다.

 

켄지로. 나는 너에게 돌아갈까?

 

***

타이치가 죽었다. 자신과 시시콜콜한 농담을 주고받던 상대가 이제는 나와 같은 세상에 살고 있지 않는다. 숨을 쉴 수 없다. 얼굴을 마주할 수 없다. 당연한 것들이 이질적인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내가 시라토리자와로 왔을 때 가장 살갑게 대해주던 사람이었다. 타이치가 있어서 학교생활에 적응했다-라는 말이 과장된 것이 아닐 정도로 우리는 가까웠다. 아니 가까웠었다. 이젠 너무 멀리 있으니까.

 

나는 너무 놀라 지켜보는 일 밖에는 할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후회가 된다. 왜 그랬지 왜 그랬어 왜 그랬냐 왜 왜 왜 왜. 밑도 끝도 없이 자신을 물고 늘어지는 질문에 괴로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좀 더 빨리 내가 대처를 했다면 그랬다면 너는 살 수 있었을까. 그렇지만 세상은 잔인했다. 자책하고 또 자책해도 너는 더 이상 돌아올 수 없었다.

 

 평소보다 그런 생각이 많이 들어 집에 들어가자마자 욕실로 발걸음을 향했다. 주 목적은 샤워였으나 거울 옆에 붙어있는 거미를 보니 거미를 무진장 싫어하던 죽은 내 친구 카와니시 타이치가 떠올랐다. 그래, 내 친구는 죽었는데 너는 살아 있구나. 아무상관 없는 거미였지만 괜스래 괘씸한 기분이 들어 샤워  기로 물을 마구 뿌려댔다.

거미를 죽였다.
죽은 친구를 떠올리게 해 날 괴롭히던 거미였다. 화장실에 갈 때 나를 신경 쓰이게 한 '그것'은 오늘 학교에 다녀온 후 마주했다. 욱하는 성격 때문에 샤워기로 거미에게 물을 마구 뿌리곤 정신을 차려보니 거미는 이미 우리 집을 떠난 뒤였다. 정신을 차리고 샤워를 끝마친 후 방으로 들어와 헤집어진 이부자리 사이로 들어가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려 덮은 뒤 기도를 했다.

[ 좋은 곳으로 갔길, 더 예쁜 무언가로 태어나길 ]

 

이불 속에서 맞잡은, 시원하던 두 손 사이로 땀이 송글 송글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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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큐 시라부 켄지로 오른쪽 전력

*주제: 질투

*고시키 츠토무 x 시라부 켄지로

*취향이 짙게 묻어날 수 있습니다...!  캐붕 주의해주세요! :)

*지각 너무 죄송합니다ㅠㅁㅠㅠ 전력에 참여하면 지각하는 병에 걸렸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처음에는 가벼운 질투로 시작을 했다. 같이 부실로 향하는 도중에 시라부의 이름이 들리면 뒤를 돌아보는 정도였던 거 같다. 급한 일인가. 그래서 나랑 가는 걸 방해할 정도로 급하게 전해줘야 하는 일일까. 궁금하다. 알고 싶다, 저 사람들의 대화. 심기 불편하다는 표정으로 멀찍이 떨어져 시라부의 조곤조곤 말하는 입을 쳐다보았다. 역시 못 기다리겠어.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누가 봐도 노골적으로 시라부의 얼굴을 감상하던 고시키가 결심 한듯한 표정으로 시라부에게 다가가려고 했을 때 시라부가 몸을 저의 발이 머무른 곳으로 돌렸다.

 

미안, 많이 기다렸지. 어느새 손톱을 물어뜯고 있는 고시키를 쳐다보며 손톱 뜯지 마. 한다. 그렇게 귀여운 얼굴로 하지 말라고 하면 제가 그만 둘 거 같아요? 능글거림을 듬뿍 담아 대답을 하곤 허리에 손을 슥 두르니 미친 새끼 라고 욕을 하며 손을 뿌리친다. 평소 같았으면 시라부 선배- 하며 뒤를 쫄래쫄래 따라다녔을 고시키였지만 오늘은 달랐다. 자신의 손을 피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다는 듯 식은 눈을 하곤 부실로 가기 위해 모퉁이를 도는 시라부의 등을 바라보며 발걸음을 옮겼다. 역시 별로야.라고 속으로 읊어주며.

 

 

시라른 전력 60분 고시시라

                   망(@10mang04)

 

 

악마의 씨가 자신의 몸에 흩뿌려진지 약 13일 정도 되었을 것이다. 작은 악마는 고시키의 가슴속. 아니 혈관이 뻗어있는 이곳저곳에서 피어올랐다. 과한 보호와 관심. 이제는 처음 보는 이들도 둘의 사이를 의심할 정도로 짙게 흘러나왔다. 남자 둘이 그렇고 그런 관계인 것이 죄인 것은 아니었지만 타인에게는 웬만하면 우리의 감정을 알려주지 말자고 연인 관계를 시작하며 당부한 시라부의 말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생각이 들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티가 나게 굴었다. 그리고 여느 드라마와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때는 점심시간. 날도 좋으니 오랜만에 옥상에 올라가서 점심을 먹자는 고시키의 말을 잊지 않고 옥상으로 올라가니 아니나 다를까. 뒤에 떠있는 해가 무심해질 정도로 자신을 발견하며 해맑게 웃고있는 고시키가 눈에 띄었다. 하여튼 저 녀석 어딜 가나 눈에 잘 보여서 좋다니까. 속으로 피식거리며 웃음을 날리곤 고시키가 미리 세팅해놓은 자리에 가서 앉았다.

 

"선배, 선배. 오늘 날씨 너무 좋은 거 같아요. 하늘 좀 봐요! 구름 한 점 없이 새파래. 꼭 바다 한가운데 같아요."

 

옆에서 쫑알거리는 고시키의 목소리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는 띠링 거리는 휴대폰에게 시선을 옮겼다. 평소에도 휴대폰을 내지 않는 저여서 익숙하게 문자메시지 함에 들어갔다. 아는 여자 후배에게 오늘 날씨가 좋다며 같이 데이트하자는 문자가 와있었다. 고시키와 연애를 하기 전, 꽤 당돌하게 저에게 대시를 하길래 번호를 던져주었던 당시의 모습이 떠올랐다. 당찬 모습에 눈에 띠지 않게 미소를 지으며 답장을 해주려는 찰나 고시키가 선배 뭐 해요? 하며 얼굴을 어깨 뒤로 슥 내밀었다.

 

그리곤 표정이 굳었다. 분명 메시지 내용을 본 것이겠지. 교실에 내려가 애인이 있어서 데이트는 무리겠다고 답장을 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누구나 그렇지만 고시키는 자기 앞에서 휴대폰만 들여다보는 걸 별로 반기지 않아서이다. 그래, 내가 고시키에게 해줄 수 있는 소소한 배려이다. 각설하고 그래서 굳이 변명 같은 말은 필요 없다고 생각하고 휴대폰 화면을 껐다. 하지만 지금 시라부의 행동은 막 터지려던 고시키의 작은 악마의 나무를 간지럽히는 꼴이었고 결국 그 시발점은 고시키의 외침으로 시작되었다.

 

선배는 대체 왜...!!! 지르다가 쑥 먹혀 들어가는 목소리에 고개를 드니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져있는 고시키가 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저랑 있는데 다른 여자애랑 노닥거리니까 좋아요? 저랑 있을 때는 웃는 입꼬리도 안 보여 주시더니 지금은 누구 보라는 듯이 웃고 계시네요. 다다다 내뱉는 말에 잠시 주춤한 시라부가 나지막하게 말을 하곤 벌떡 몸을 일으키며 옥상 문 손잡이를 잡는다.

"너도 요즘 나한테 너무 집착하는 거 같아. 그거 자제해."

그리고 문을 열고 계단으로 한 발자국을 내디뎠다. 딱히 반박할 말이 없는 건 아니었다. 이 상황을 빨리 무마시키고 싶었던 나름대로의 행동이었지만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고 말았다.

 

고시키 입장에서는 자그마한 폭탄과도 같았던 시라부의 돌발 행동은 더 화를 돋우었고 시라부가 문 저편으로 사라지고 마자 낮은 음성으로 욕을 내뱉었다. 씨발.. 괜히 옆에 있는 죄 없는 문을 발로 차보기도 하고 하늘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아까까지만 해도 자신을 기분 좋게 해주던 푸른 하늘이 이젠 지금 제 꼬락서니를 비웃는 거 같아 기분이 더 나빠져 씩씩거리며 문을 쾅 닫고 나왔다. 주인 없어진 돗자리가 옥상 위로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마구 뒹굴었다.

***

그런 껄끄러운 일이 일어난 후로부터 둘의 사이는 조금씩 멀어졌다. 물론 두 사람 전부 화해를 하기 싫은 것은 아니었지만 사과할 타이밍을 잘 잡지 못하였고 무엇보다 둘 다 고집이 너무 셌다.  둘의 사이를 유일하게 알고 있는 텐도에게 이런 곳에서는 똥고집 안 부려도 된다고 조언을 받았지만 그럴수록 눈치를 보는 시라부와 고시키였고 죽어가는 건 가운데에 끼여서 커플의 고민 상담을 해주는 텐도였다.

 

시라부도 고시키의 바보 같지 않은. 자신을 밀어 붙이는 모습에 많이 놀란 모습을 보였다. 매번 장난 식으로 시라토리자와 배구부의 에이스는 자신이라고 시도 때도 없이 외쳐대는 '평소의' 고시키와는 정반대로 정색을 하며 몰아붙이는 모습에 괜히 자기가 잘 못 했다는 생각이 드는 시라부였지만 자신은 결백했다. (그리고 고시키 앞에서 웃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은 건 부끄러워서였다. 어릴 적부터 좋아하는 사람에게 감정 표현을 잘 하지 못 했다. 그래서 미안한 감정이 든다.) 확인만 하고 교실에 내려가 답장을 할 계획이었으니까. 그런데 그게 이렇게 틀어질 줄을 누가 알았을까. 복잡해진 머리를 좌우로 대여섯 번 흔든 후 정신을 다잡으려고 노력했다.

 

 

고시키 역시 생각이 많아진 건 분명했다. 자신이 윽박질러서 일어난 일이고 한 번만 더 참았더라면 언성 높이지 않고 잘 넘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입이 방정이었다, 입이. 괜히 성한 입을 툭툭 치고는 책상에 팔을 괴고 엎드렸다. 아 이제 어떻게 사과하지. 사실 고시키도 알고 있었다. 그 여자애는 저와 같은 1학년이고 의외로 노는 편인지 동급생들은 물론 복도를 지나가는 선배들의 입에도 자주 오르내리고는 했다.

 

물론 그 여자애가 시라부 선배에게 접근하는 이유도 알았다. 전에 슬쩍 엿들은 거지만 그 아이가 마음에 담아 두고 있는 건 시라부 선배가 아닌 우시지마 선배였다. 알았지만, 아니 알았기에 더 심술궂게 굴었던 걸까. 눈치를 못 채는 시라부 선배가 미웠던 걸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자신이 알려주면 되는 거였다. 걔는 선배한테 관심 없으니까 나만 바라봐 달라고. 그렇게 진실을 토해냈으면 다 끝날 일을 실타래처럼 꼬이게 하고 있는 건 바로 저, 고시키 츠토무였다.

 

이대로는 자신이 버티기 힘들 거 같아 먼저 2학년 층을 방문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미 자신의 반과 연결된 계단으로 내려오는 시라부와 마주쳐버렸고 둘은 벙찐 표정을 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적을 깬 건 시라부였다. 저기, 고시키. 날 서있지 않은 말투에 고시키는 검은 머리를 슥 들어 올려 시라부의 눈에 초점을 맞췄다. 혹시 오해할 까봐 말해주는데 나 진짜 걔랑 아무 사이 아니다. 오해하지 마 알겠지? 속사포로 말을 하는 시라부에 고시키는 한숨을 쉬곤 선배는 아직도 내가 그런 눈치 없는 애로 보여요? 하며 받아쳤다. 아 물론 눈치 없기는 하지만 그 정도는 아니라고요. 저도 귀와 눈이 있어요. 그건 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오히려 죄송한 건 저네요. 무례하게 소리 지르고 기분 나쁜 행동해서 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이며 고시키 딴에는 정중하게 사과하는 모습에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던 시라부가 당황한 표정으로 왜 고개를 숙이냐고 하며 계단을 빠르게 내려와 고개를 원래의 상태로 맞춰준다. 그럼 이제 나 용서해준 거예요? 삐죽거리며 시선을 피하는 고시키의 모습에  아주 살짝 미소 지으며 당연하지.라고 대답하곤 꼭 안아준다.

 

이렇게 고시키의 마음속에 있는 작은 악마의 싹은 뿌리 채도 모자라 주변에 있는 흙덩어리까지 송두리째 뽑혀갔다.

 

***

 

안녕, 내 이름은 텐도. 올해로 시라토리자와 3학년이지. 내가 요즘 신경 쓰이는 애가 있는데 걔가 다른 애랑 말만 하면 괜히 신경이 곤두서지고 그런다? 아 상대방 이름이 누구냐고? 우시지마 와카토시라는 애인데...

 

-fin.

 

읽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ㅠㅁㅠ(야광봉흔들

Posted by マ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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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가후타 (코가네가와X후타쿠치) 그림자-1

 

*R-16(17에서 16으로 수정되었습니다ㅠㅁㅠ!!)

 

*W.망(@10mang04)

 

 

"그 얘기 들었어?"

 

"무슨 얘기?"

 

"왜, 있잖아. 2학년 A반 후타쿠치. 걔가 말이야..."

 

"어머 정말?"

 

 

 

씨발. 낮게 욕을 읊조리며 수군거리는 여학생들 틈을 지나간다. 새벽에 혹시 몰라 밤에 있었던 일을 아오네에게 보낸다는 게 그만 터치를 잘못해서 A반 단체 채팅방에 보내 버린 것이 화근이었다. 본인의 실수이니 타인에게 화를 내지 못한다는 사실이 더 화를 돋우었다. 소문이 퍼지고 퍼지는 속도가 빠를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반나절도 지나지 이런 식으로 다른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건 싫단 말이지. 의자를 뒤로 밀어 자리에 앉은 후 눈을 감고 책상에 머리를 기댔다. 그렇게 몇 분간 지났을까. 눈을 떠보니 사르륵 흘러내린 앞머리 사이로 큰 덩치의 사내가 저에게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괜찮나."

 

어깨를 툭툭치며 괜찮냐고 물어보는 낮고 둔탁한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무엇보다 다치지 않았으니까. 아마도. 뒤를 이어오는 문장은 입 밖으로 내뱉지 않고 꿀꺽 삼켰다. 불확실한 대답을 걱정하는 친구에게 들려주기 싫었다. 말을 걸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웠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계속 고개를 파묻고 있었을까, 잠시 뒤 빨리 자리에 앉으라는 담임 선생님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오고 그렇게 나의 하루는 아주 느리게, 아주 천천히. 영원히 흐리지 않을 것처럼 흘러갔다.

 

***

 

 

방과 후 배구부 연습 부 연습시간에 잠깐 모니와를 불러 조용히 어제 있었던 일을 말하려고 했던 후타쿠치의 계획이 코가네가와 덕분에 완벽히 무너졌다. 진짜 이 자식은 눈치 좀 있어야 해. 부글부글 끓는 속을 식혀갔며 체육관에 있는 배구부원 모두에게 말을 했고 저의 마지막 말이 끝나고 입술을 다물자, 머리를 콩 때려오는 모니와였다.

 

"뭐어?!?! 내가 조심하라고 했지!!"

 

아얏. 넌 아프다고 할 자격 없어,인마. 내가 그렇게 조심하라고 당부 했는데도 너는..! 말은 모나게 하지만 자신의 후배가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는 것이 안쓰럽고 분했는지 눈에는 눈물이 살짝 고여있었다. 아이 참 그런걸로 울지 말아요 모니와상-. 울려고 하니까 주름 생기잖아-. 능글거리며 모니와를 달래 주는 후타쿠치의 말을 헛기침으로 끊는 카마사키에 시선이 집중되었다. 저기, 그 사건 범인 말인데.. 한 번 표적으로 정한 사람은 계속 쫓아다닌다고 하지 않았어? 그래서 더 조심하라고 아침 뉴스에 나온 걸 본 기억이 나서. 카마사키의 말이 끝나자 체육관은 찬 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정적을 깬 건 매니저이고 동시에 동급생인 마이의 목소리였다. 그, 그럼 한 명씩 돌아가면서 후타쿠치를 집까지 데려다 주는 건 어떨까요? 하나보단 둘이 더 상황에 대처하기도 좋고.. 당찼던 말의 시작과 대조되게 점점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에 오, 괜찮네. 어때 후타쿠치? 하며 반응한 건 사사야였다. 딱히 상관없지만 저를 데려다준다고 가정했을 때 같이 온 사람은 어떻게 집에 간다는 거예요. 그 인간이 당신들한테 해코지하면 어쩌려고 그럽니까. 예? 입을 삐죽거리며 말하자 아까부터 웬일인지 조용하던 코가네가와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며 소리를 빽 지른다. 그 사건의 범인!! 표적으로 정해둔 사람 외에는 신경 쓴다고 하지 않았으니까 괜찮을 것임다!!! 후타쿠치 선배가 다치는 건 보고 싶지 않아요!! 소리 지르는 코가네가와에 놀란 모니와가 쟤는 참 몇 번을 봐도 적응이 안 된다고 중얼거리자 그 소리를 들은 코가네가와가 흠칫한다. 죄송함다!!! 운동장 100바퀴 돌겠슴다!!!! 울상을 하곤 모니와에게 사죄(?)하는 코가네에 시끄러우니까 토스 연습이나 하라고 일러둔 후 엉덩이를 툭툭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어서 다테 공 차기 주장을 사수하는 계획을 세우죠. 그게 뭐야, 유치하게. 얼굴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낯간지러운 말들을 하는 저에게 카마사키 상이 야유를 보낸다. 하지만 몰아붙였으면 몰아붙였지, 절대 당하지는 않는 자신이다. 어라라 그러고 보니까 카마사키 상 취업은 잘 되어 가고 있는 겁니까? 공부는요? 이렇게 딴짓하실 시간 있으신 거냐고요, 대답 좀 해보시죠. 깐족거리는 저의 모습과 그런 자신에게 쏘아댈 준비를 하는 카마사키를 본 모니와가 말장난이 길게 이어질 거라고 직감하곤 아오네를 시켜 장난을 중단시킨다. 그리고 그런 배구부원들을 보며 매니저인 마이는 아까보다 부드러워진 분위기에 조금은 숨통이 트인다고 생각하며 안도감 섞인 한숨을 푹 내쉬었다.

 

 

***

 

 

자 그럼 결정된 거죠? 체육관 창고에 있던 먼지 쌓인 화이트보드에 쓰여 있는 이름들과 날짜를 손톱으로 툭툭 건드리며 한 손으론 보드마카의 뚜껑을 닫는다. 좋아 오늘은 나인가! 주먹을 불끈 지으며 일어나는 카마사키에 근육 선배랑 집에 가니까 그 인간은 안 따라오겠네요- 하며 괜히 빈정거려 본다. 너는 진짜 도와주겠다는 사람한테도 뭐라 그러냐! 으르렁거리는 두 사람을 익숙하다는 듯이 말리는 아오네를 보며 어색한 웃음을 짓던 사쿠나미가 코가네가와를 문득 쳐다봤다. 코가네가와 군, 어디 아파? 식은땀이 가득하네. 가까이 다가와 열이 있는지 확인하려는 사쿠나미의 손을 탁 쳐내곤 아, 사쿠나미 군 미안해. 나 속이 좀.. 선배들 저 오늘 먼저 가겠습니다! 집 조심히 들어가세요! 하면서 순식간에 체육관을 빠져나간다. 뭐야 쟤 오늘 좀 이상하네 진짜 무슨 일 있나. 수군거리는 선배들의 목소리를 듣는 사쿠나미의 눈이 미세하게 빛난다.

 

 

 

"다행히 아무 일도 없었네. 전부 내 덕분인 줄 알아라, 후타쿠치. 나 나가면 문고리까지 꼭 잠그고."

 

 

빌라 앞까지만 데려다줘도 괜찮다는 말을 무시한 채 현관까지 들어와 끝까지 저의 걱정을 해주는 카마사키 선배의 말에 괜스래 울컥해서 고맙다고 말 한 후 코를 훌쩍였다. 뭐야 후타쿠치 우는 거야-? 그럼 이번에는 내가 달래줘야 하는 건가-?? 장난스러운 목소리에 등을 떠밀며 얼른 나가라고 하는 저가 귀여웠는지 머리를 툭툭 쳐주며 그럼 간다. 내일 보자. 라고 하며 나가는 카마사키 상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이내 정신을 차리곤 도어록으로 잠가져 있는 문을 문고리까지 걸어서 완벽하게 잠갔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 안심을 하고 잠자리에 든다. 오늘도 힘든 하루였어.

 

 

 

****

 

그렇게 다음 날, 또 다음 날. 이렇게 일주일을 반복하고 드디어 1학년의 차례가 찾아왔다. 일주일간 아무 일도 없었으니까 이제는 그만해도 되지 않냐고 마이에게 물었지만 그러다 한 번에 훅 간다면서 억지로 제 옆에 사쿠나미를 붙여 놓은 마이를 향해 속으로 욕을 날렸다. 보자 보자 하니까 이제 완전 유치원생으로 아는구먼? 마이를 곱씹으며 자신의 옆에서 말없이 걷고 있는 사쿠나미를 힐끔 바라보았다. 저보다 체구도 신장도 작은 사쿠나미에게 지켜질(?) 거라는 상상을 하니 웃음이 나왔지만 꾹 참았다. 혹시 범인이 나오면 사쿠나미한테 도망가라고 한 다음에 혼자서 싸워야지 하며 쓸데없는 생각이 절정에 다를 때 저기, 후타쿠치 선배. 하고 자신을 불러오는 사쿠나미의 여린 미성에 정신이 서서히 돌아왔다.

 

"왜 불러?"

 

"그게.. 있잖아요.." 머뭇거리는 사쿠나미의 잇새로 의외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코가네가와 군이 이상한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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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가후타 (코가네가와 X 후타쿠치) 그림자

*R-17

*글쓴이 (@10mang04)

 

하루종일 비가 내린 탓인지 축축하게 가라앉은 공기와 더불어 뿌연 안개까지 시야를 가렸다. 세상이 흉흉할 뿐더러 요근래에 계속 이어지는 납치 사건 때문에 후배들 관리에 들어간 모니와의 밤 늦게는 되도록이면 돌아다니지 말고 이어폰도 빼고 다니라는 잔소리를 들은 체 만 체 하곤 소리를 더 키우면 귀에 무리가 간다는 경고문이 뜰 때까지 음량을 높이고 긴 다리로 중간중간에 있는 물 웅덩이를 피하며 골목길을 휘적거리는 소년의 이름은 '후타쿠치 켄지' 이다. 평소 음산한 분위기를 좋아하고 다른 사람들이면 진저리를 칠 고어 영화,잔인한 게임 그리고 소설까지 모두 마스터했다면 말 다 한 거 아닐까. 물론 본인도 직접 자기가 그런 일을 겪는다고 생각하면 소름이 끼쳤지만 어디까지나 '상상' 그리고 '창작' 속의 내용이므로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기로 마음 먹은 것은 이미 오래 전이다.

 

"사박-."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골목길의 끝. 그러니까 거의 저의 집에 가까워 지고 있을 때 휴대폰을 꺼내고 음량키의 아랫부분을 꾸욱 누르며 귀에서 이어폰을 슥 빼는데 어디선가 나뭇잎을 살며시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냥 같은 빌라에 사는 사람이겠거니- 하며 무시하려 했지만 가로등의 빛에 비춰져 그림자를 만든 '자신의 뒤에 서있는 무언가'의 손에 들린 것을 보고 걸음을 서둘러 할 수 밖에 없었다.

 

자박 자박. 한 발짝 씩 내디딜 때마다 뒤에 있는 무언가의 걸음은 저의 발걸음 속도에 맞춰졌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했던가. 아 이거 큰일이구나, 생각하며 배구부에서 갈고 닦은 운동 실력으로 그 자리를 벗어났다. 손가락을 덜덜 떨어가며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 안에 들어와 신발을 어지럽게 벗으며 현관에서 코너를 돌면 바로 나오는 자신의 방 불을 키고 침대에 풀썩 주저앉았다. 내일 학교를 가야하는 몸이라서 어서 자야 하지만 지금 이 상태론 잠도 오지 않을 거 같았지만 운동을 하고 온 몸이여서 눈꺼풀이 무거웠다. 갑자기 몰아치는 졸음에 불을 끄곤 서둘러 이불을 덮었다. 그리고 자신의 의식이 저 편으로 날아가기 전에 한 가지만 떠올렸다. 그 '무언가'의 손에 들려 있었던건

 

'망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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