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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파라 1

카테고리 없음 2017. 3. 25.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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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큐 다테공 전력 60분 주제 '흉터 /  상처 "
* W. 망(@10mang04)
*후타카마후타

 

그러니까 아마 작년 겨울이었을 것이다. 중학교에서 올라와 아기 티를 벗어내지 못한 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키가 훌쩍 자란 소년에게. 그렇지만 아직 마음은 여물지 않은 소년에게 상처를 준 것이 말이다.

"후타쿠치 나 너한테 이제 관심 없다."

당신이 아무렇지 않게 입에서 뱉어내는 문장 하나가 제 가슴을 도려내고 더 괴롭게 쑤셔댔다. 원래 넌 안될 거였어라고 비웃는 거 마냥 지독하고 끈질기게. 처음엔 당황했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카마사키상? 갑자기 뜬금없이...

그러자 그가 말했다. "아니, 뜬금없는 거 아니야. 전부터 생각하고 있었어."
과연 언제부터 생각하고 있던 걸까. 전에 구미 젤리를 사달라고 가게에서 졸랐을 때? 하지 말라고 했는데 계속 장난을 쳤을 때?
"그런데 차마 너한테 말은 못하겠더라. 지난 시간 동안 고마웠다. ..내일 학교에서 보자."
자기 할 말만 하고 홀연히 떠나서 사람 외롭게 만드는 재주는 정말 대단하다고 그 잘난 얼굴에 쏘아주고 싶었다. 사람 손을 타지 않아 앙칼진 고양이마냥 천천히 뒤흔들고 싶었다.

그러나 정작 흔들리는 건 나 자신이었다. 자기를 등돌려 뚜벅뚜벅 걸어가는 뒷모습에 어떠한 말도 전할 수 없었다. 눈물도 흐르지 않은 걸 보니 그렇게 잡고 싶었던 생각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애정을 넘어선 감정은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나갔고 지금 나는 그때 나를 거절했던 사내와 마주하고 있다.

".. 졸업 축하드립니다. '그 일'이 벌써 작년이네요. 시간 빠르다, 그쵸?"
움찔. 분명 움찔 거렸다. 제가 '그 일'이라는 단어를 언급함과 동시에 티는 많이 나지 않았지만 두 팔에 얹은 손이 파르르 떨리는 걸 보았다. 올곧게 자신을 쳐다보던 눈동자가 잠시 다른 곳을 바라보는 것을 보았다. 그리곤 한숨 한 번. 이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너는 내가 안 밉냐? 그러게 너도 참 매정하다. 한 번쯤은 그때 왜 그랬냐고 물어볼 수도 있었고 그 당시에 나를 잡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물론이다. 밉지 않을 수가 없다. 공고에서 잘생기기로 소문난 자신이었다. 눈앞의 사내가 자신에게 고백을 해왔을 때 이 사람 미친 건가라는 생각부터 해왔던 저였는데 자기도 모를 사이에 카마사키 야스시라는 남자에게 침식되어갔다. 사소하게는 생각하는 것부터 심하게는 생활패턴까지 말이다. 그랬던 이유는 아마 제가 다른 사람에게 정을 준 적이 없어서인 것 같다. 하지만 제가 정을 쏟아준 사람은 절 떠났다. 아직 마음에서는 줄 사랑이 많이 남았다고 외치고 있었지만 애써 무시하고 다른 일에 몰두했다. 배구연습,취업준비 등등. 그래도 그 사람이 머릿속에서 잊혀지지 않으면 잠을 잤다. 꿈에서도 나는 그 인간을 잊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었다. 꼴사나웠다.

"매정한 건 카마사키상이죠. 어떻게 절 혼자 두고 그렇게 나갈 수 있습니까? 저 같았으면 근처 음식점에라도 가서 콜라 한 잔 쥐여주고 말했을 겁니다. 사람이 무드 없게.. 체육관에서 이별이 뭡니까 정말."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몇 개월이 지난 지금은 제가 먼저 사내의 곁을 지나갔다. 먼저 등을 보여줬다. 왜 그렇게 기분이 좋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복수.. 비스름한 것에 성공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상처는 소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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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모브 너 말이야. 아까부터 우유 냄새나는데 뭐야?"

 

어김없이 문을 활짝 연 영등등 사무소에서 레이겐의 낮은 목소리가 울러퍼졌다. 사진 속에 있는 영을 제령 해달라는 상담을 받고 열심히 포토샵으로 지우고 있던 와중이었다. 거슬렸다면 처음부터 거슬렸겠지만 달큰한 우유향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가 모브가 온지 30분 후가 되는 지금이 되어서야 입을 열었다.

조용히 돈을 정리하던 모브가 고개를 들어 레이겐과 눈을 마주했다.

"아 이거 리츠가 사다 준 샴푸랑 바디워시 향이에요. 제가 우유 좋아하는 건 어떻게 알았는지 목욕용품 다 떨어진 다음 날에 우유 관련된 제품들을 사오더라구요."

리츠가 그걸 모를 리가 있냐.. 동생 생각에 기분이 좋은지 헤실 거리는 모브를 보며 속으로 모브의 말에 대답을 해주었다. 카게야마 리츠. 지금 제 앞에서 돈을 정리하는 '모브'라고 불리는 소년의 1살 어린 동생이다. 전부터 아니꼽게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이 불쾌해서 가까이하지 않았는데 모브와 같이 있으면 듣고 싶지 않아도 그의 이야기를 듣고는 했다. 아침에 함께 등교하며 나눈 얘기라던가 학교에서 리츠가 인기가 엄청 많다던가 하는 얘기들 말이다.

"다 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포토샵에 심혈을 기울일 때쯤 의뢰를 끝낸 레이겐이 팔을 쭉 펴고 기지개를 켰다. 끙 앓는 소리를 내며 열심히 뭉친 어깨와 팔을 풀어주다 문득 시계를 본 레이겐이 오늘은 그만 집에 가자고 모브에게 말하며 의자를 밀어 넣었다. 자 이제 나가볼까~ 기분 좋은 울림을 들려주는 구두 소리를 내며 천장에서 맥없이 돌아가는 선풍기 2개의 스위치를 끄고 불도 전부 껐다.

".. 모브? 이만 가자니까?"

"..."

".... 모브?"

".. 예?"

"이만 가자고. 몇 번을 말해야 듣는 거냐, 너는."

 

..아 죄송해요. 잠시 다른 생각을 하느라.. 레이겐이 다그치기 전까지 아무 미동도 없던 모브가 서서히 움직였다. 얘가 왜 이래. 더위 먹었나. 평소 자신의 말을 설렁설렁 넘긴 적이 없는 모브였기에 레이겐 자신이 모브를 약간 이상하게 생각한 것은 아마 이때부터 였을 것이다. 

 

[모브레이] 후각(1)   망 (@10mang04) 

 

모브와 어색한(사실은 레이겐 혼자만 어색한) 일이 있던 후 두 사람이 만나게 된 날은 화창한 주말이었다. 전에 모브에게 자신이 자주 가는 햄버거집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했던 것. 아무리 자신이 모브에게 너무한다고는 하지만 약속은 꼭 지킨다는 사명(?)을 가진 사내였기에 약속을 취소할 수는 없었을 터.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모브를 만날 준비를 하던 레이겐은 거울에서 빗질을 하다 창문을 올려다보았다. 분명 일기예보에서는 비가 쏟아질 것이라며 우산을 꼭 준비하라고 하였는데 비는커녕, 바람 한 점도 불지 않는 날씨에 레이겐은 혀를 쯧 찼다. 그럼 그렇지. 기상청은 믿을 수가 없어요, 믿을 수가~

철컥. 집 문이 닫히는 소리와 열쇠로 잠근 후 잘 잠겼는지 확인차 문을 몇 번 흔들이는 소리가 두어 번 난 후 계단을 내려오는 레이겐의 발소리가 약하게 들렸다. 그의 옷차림은 영등등 사무소에 근무할 때보다는 좀 편해 보였다. 평소에는 잘 입지 않는 맨투맨과 검은색 운동복을 입곤 주머니에 넣은 열쇠를 짤랑거리며 약속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 모브 미리 와있었냐!"

문을 열자 창가 쪽 테이블에 앉아있는 모브를 발견한 레이겐이 손을 흔들며 다가갔다. 내가 많이 늦은 건 아니겠지? 사람 좋은 미소를 띠며 의자를 끌곤 자리에 앉아 제 앞에 앉아 있는 소년의 태세를 살폈다. 다행히 저번처럼 쎄한 느낌은 없는 것 같아 긴장을 조금 놓곤 테이블 위에 손을 까딱거렸다. 모브, 나 기다릴 때 동안 먹고 싶은 건 정했어? 아.. 사실 못 골랐어요. 그냥 스승님 드시는 거 먹을게요. 그래, 그럼. 나 주문하고 온다?

 

웅얼거리며 알았다고 대답하는 모브를 보곤 주문하는 곳에 가서 햄버거 세트 2개를 주문시키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전에는 이러지 않았지만 조금 어색함이 맴도는 공기에 괜히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요즘 모브에게 학교생활은 어떻냐고 물어보았다. 모브도 긴장을 했었는지 대화를 할 미끼를 던져주자 신이 난 듯 얘기를 했다. 요즘에는 육체개조부 선배들과 방과 후에 스쿼트를 하는데 힘들지만 갈 수록 숨이 벅차오르는 게 적게 느껴져서 나름 보람차다며 조막만 한 얼굴에 홍조를 띠며 말했다. 아 역시 중학생인가.라는 생각을 하다가 모브가 저기, 스승님. 하고 부르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어 황급히 대답했다.

"..! 어? 왜??"

"아니 별건 아닌데요 스승님 혹ㅅ,"

지이이잉

모브가 쭈뼛거리며 말을 꺼내려 하자 햄버거 세트가 나왔다는 신호가 울렸다. 아 미안 모브. 뭐라고? 못 들었어. 진동을 뒤로 하곤 모브의 말을 들으려 했지만 이내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햄버거 세트를 가지고 오겠다고 말을 하곤 자리를 떠났다.

"그래서 모브. 아까 하려고 했던 말은 뭐야?"

햄버거를 가져와 테이블에서 먹은 지 5분 정도 지났을 때 아무리 해도 먼저 입을 열어줄 기미를 보여주지 않는 모브가 답답해서 먼저 입을 연 레이겐이었다. 입에 있는 음식물을 목구멍으로 넘기곤 모브가 말했다. 생각해 보니까 여기서 말하기는 좀 그렇네요.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지금 말하기 불편하다고 하는 아이에게 아무리 궁금하다고 다그치기는 어려운 법이다. 어쩔 수 없이 알겠다고 하고 햄버거를 마저 먹는 두 사람 뒤로 먹구름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아 잘 먹었다! 너도 잘 먹었냐, 모브?"

"네, 스승님. 사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 뭐 이런 걸로 고마워 해. 멋쩍은 듯 노란빛이 도는 뒷머리를 매만지는 손에 차가운 느낌이 들었다. 엑 이게 뭐람.이라고 생각한 것도 잠시. 집에 나오기 전에 보았던 일기예보가 머릿속을 팟 지나갔다. 비..!

"모브 너 혹시 우산 있냐?"

"에? 우산이요? 없을 텐데.."

아 어떡하지. 입술을 잘근거리는 레이겐을 빤히 쳐다보던 모브가 말했다.

".. 그럼 저희 집 가실래요? 여기에서 제일 가깝고.. 부모님 때문에 걱정 되시는 거면 안 그러셔도 괜찮아요. 부모님 잠깐 어디 나가셔서.."

솔직히 아니라고 거절하고 싶었지만 이대로 가면 감기에 걸릴 확률이 너무 높아져서 미안하지만 실례 좀 지겠다고 말을 한 후 모브를 따라 집으로 갔다. 점점 굵어져가는 빗줄기에 인상을 찌푸리곤 빨리 집에 들어가고 싶다고 생각을 할 때쯤 모브의 걸음이 멈추고 안으로 들어가라는 말이 들렸다. 미안하다 모브!라고 말해주곤 집으로 발을 디뎠고 이어 모브가 들어온 후 문이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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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큐 카와니시 타이치 중심

*앵스트

*W.망( @10mang04)

 

 

거미를 죽였다.
며칠 전부터 날 괴롭히던 거미였다. 화장실에 갈 때마다 신경쓰이게 한 '그것'은 오늘 3시쯤 다시 마주했다. 새벽에는 보통 텐션이 다운되는 지라 거미를 놓아 줄 정도로 기분이 썩 좋지 않던 나는, 세면대 맨 아랫두리에서 위로 올라오려고 안간힘을 쓰던 거미의 다리부터 시작을 해서 몸통 전체에 차가운 물을 끼얹졌다.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치는 모습을 지켜보며 배수구 안으로 완전히 빨려 들어갈 때 까지 물을 계속 부었다. 마침내 거미가 완벽하게 사라진 것을 확인한 후 방으로 들어와 헤집어진 이부자리 사이로 들어가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려 덮은 뒤 기도를 했다.

[ 좋은 곳으로 갔길, 더 예쁜 무언가로 태어나길 ]

 

이불 속에서 맞잡은, 텁텁했던 두 손 사이로 땀이 송글 송글 맺혔다.

 

 

돌아오다

       망(@10mang04)

 

 

창문 앞에 달아놓은 블라인드 사이로 빛이 스며들어와 제 얼굴을 톡톡 두드렸다. 눈꺼풀위로 내려오는 햇살에 눈을 슬며시 뜨곤 옆에서 충전을 해놓고 있었던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였다.'10시17분' 아직 12시도 넘지 않은 시간에 잠에서 깬 저에게 생활리듬이 잘 잡혔다고 속으로 칭찬해주고 있을 때 휴대폰에서 띠링하는 소리가 연달아 났다. 막 잠에서 깬 것을 광고라도 하는 듯이 붕 뜬 머리를 벅벅 긁으며 문자메시지를 확인했다.

 

[타이치 오늘 영화 어때.]

 

딱 필요한 것만 보내는 형식적인 문체에 굳이 이름을 확인하지 않아도 발신자를 알 수 있었다. 시라부 켄지로. 저와 같은 학교(학원)을 다니는 동급생 친구이다. 같이 땀을 흘리며 훈련을 해서 그런가, 저희는 다른 친구들보다 더 사이가 돈독해졌고 이제는 주말에 영화를 보러가거나 밥을 먹으러 가는 등 여가생활을 함께 즐기는 사이로 번져갔다. 어항 속에서 뻐금거리며 헤엄치는 금붕어 대여섯마리를 보면서 영화 보고 와서 물 갈아 줘야지- 같은 시시콜콜한 생각을 한다. 하품을 찍 뱉으며 화장실로 어슬렁 어슬렁 향하는 카와니시 뒤로 휴대폰 액정에는 12시까지 영화관 앞에서 만나자는 내용의 문자가 보내져 있었다.

 

***

 

 평소에도 약속에 늦는 편이 아니었지만 오늘은 약속시간보다 약 15분 정도 먼저 나와 있었다. 늘 그런 식이었다. 약속은 시라부가, 코스는 내가. 정해지기라도 한 듯 우리는 항상 그렇게 만남을 가져왔고, 나는 익숙하다는 듯이 핸드폰을 꺼내들어 어디를 가볼지 검색해봤다. 연인 사이도 아닌데 뭐 이렇게 신경 쓰면서 다닌냐고 물어본다면 애인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친구여서라고 대답할 것이다. 실제로 전에 그렇게 답했다가 보증을 잘 서줄 것이라는 대답을 들었지만 돈이 오고 가는 곳에는 선을 넘지 않을 것이기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았다.

 

약속 시간 5분 전. 제가 항상 빨리 나와 있다고 하더라도 지각은 한 적이 없는 시라부이기에 왔을 때부터 앉아있던 벤치에서 긴 다리를 왔다 갔다 했을까 귀에서 이어폰이 빠지는 느낌이 나서 고개를 들어보니 말끔히 정리되어있는 연갈색의 머리가 저를 반겼다. 오늘도 일찍 나와있었네. 뭘 새삼스럽게 물어보고 그러냐. 흔한 고등학생의 말투로 몇 마디 대화를 나누곤 조금 뒤면 시작할 영화를 보기 위해 영화관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

 

" 야 너 잘 자더라."

" 다음부터 영화는 내가 고를 거야.. 아 졸려."

 

킥킥거리며 다음 번 영화도 기대하라는 외침에 귓가에 손을 휘적이곤 화장실로 들어갔다. 영화가 끝나면 화장실에 사람이 복작거려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웬일인지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캐러멜 팝콘 때문에 살짝 끈적해진 손을 열심히 씻었다. 시원한 느낌에 기분이 좋아져 영화의 내용을 곱씹어 봤다. 그래, 분명히 처음엔 기대를 하고 갔다. 전 작품이 꽤 흥행했던 감독의 복귀작이기에 이번에도 재미있을 줄 알고 이 영화를 보자는 시라부의 말에 흔쾌히 긍정의 대답을 했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은 되돌릴 수 없었다. 살면서 이런저런 영화도 보는 거지.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다시 불필요한 생각을 접고 내용을 생각하려 하자 아까 시라부가 말 한 듯이 정말 시작한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잠이 들어버린 바람에 생각이 하나도 나지 않았다. 화장실에 살림 차렸냐고 계속 문자를 보내는 시라부 때문에 미처 기억을 다 더듬지 못하고 밖으로 나와야 했다.

 

"저기, 켄지로. 방금 봤던 영화 내용이 뭐였지?"

 

아무리 팝콘을 먹었지만 팝콘으로는 속이 차지 않는 남자 둘이었다. 우리는 영화관 근처 맛집에서 점심을 먹자고 타협을 하곤 밖으로 나왔다. 목적지로 향하던 중, 아까 잊어버리고 하지 못 했던 말을 넌지시 물었다. 뭘 잘못 씹은듯한 표정으로 저를 쳐다보기에 뭐. 하며 대꾸했다. 고개를 휘휘 저으며 대뜸 자신에게 영화 포스터는 기억이 나냐며 물어보았다. 넌 내가 그 정도로 둔감할 거 같냐. 당연히 기억나지. 번데기에서 나비가 깨어나는 거잖아.

 

 그렇게 대답하며 팔짱을 끼고 있던 두 손을 팔에 슥슥 문질렀다. 언제 생각해도 곤충이나 벌레는 싫은 법이었다. 문득 새벽에 죽인 거미가 떠올랐다. 한참 조잘대다 말이 끊긴 저를 시라부가 슥 쳐다보기에 그래서?라고 되물었다.

 

 

" 그 영화, ....잖,"

아.

점점 말소리가 멀어지고 결국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내 몸은 공중을 날아 바닥에 하염없이 떨어졌다. 뜨겁고 끈적한 것이 몸에서 흘러나오는 느낌이 들고 머리가 웅웅거렸다. 팔과 다리가 쑤신다는 느낌이 들어 이제는 붉어진 눈을 부릅뜨고 소란을 피우는 사람들 사이에서 시라부를 찾았지만 자꾸 눈이 감겼다.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고 하였지만 이렇게 빨리 그 시간이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 했다. 전신이 저릿거리며 아프던 느낌도 없어져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와 수군거리는 정도를 넘은, 그러니까 소란스러워진 제 주변을 둘러싼 행인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차에 실어졌고 아마 나의 '첫 번째 인생.' 은 거기서 마침표를 찍었을 것이다.

 끝내 너를 보지 못한 채

 

***

 

그로부터 몇 개월이 지났을까. 너는 곧잘 입었던 하복을 벗곤 춘추복 차림으로 등하교를 했다. 시간이 벌써 그렇게나 흘렀나 보다. 나한테는 느렸다면 느렸지 절대 빠른 것은 아니었는데 말이다. 그리고 나는 다시 태어났다. 비록 인간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태어났다. 내가 가장 증오하고 혐오하였던 생명체로 끊어진 목숨줄을 다시 잇는다는 것이 여간 우스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죽지 않았던 건 이렇게라도 너를 지켜보며 살고 싶었기 때문일 거라고 하루에 수십 번은 되뇌고 있다.

 

평소처럼 현관문이 여닫히는 소리가 들려오고 나는 네가 왔다는 것을 직감했다. 화장실로 들어온 너의 얼굴이 울그락 푸르락 하였다.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었니 라고 물음을 건네고 싶어도 건넬 수 없는 처지였기에 한없이 침묵을 지키고 있는 그때, 넌 갑자기 텅 빈 눈으로 날 응시하더니 샤워기를 들곤 나에게 물을 뿌렸다. 안 돼. 이러지 마. 나는 말이야, 나는 더 살고 싶어. 입으로 나갈 리 없는 문장을 외쳤다. 야속하게도 너에겐 닿지 않았나 보다. 아니 당연하지만 왠지 눈물이 났다.

 

싫어하는 것으로 다시 태어나 심지어 전생(前生)의 기억도 유지한 채 며칠을 너만 바라보았는데 너는 나에게 너무 차갑고 뜨거웠다. 배수구로 빨려 들어가기 몇 초 전. 문득 내가 죽인 거미가 생각이 났다. 그래, 너도 이런 기분이었니? 생의 끝자락에서 던지는 질문에 돌아올 대답은 없었지만 노파심에 물었다.

 

켄지로. 나는 너에게 돌아갈까?

 

***

타이치가 죽었다. 자신과 시시콜콜한 농담을 주고받던 상대가 이제는 나와 같은 세상에 살고 있지 않는다. 숨을 쉴 수 없다. 얼굴을 마주할 수 없다. 당연한 것들이 이질적인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내가 시라토리자와로 왔을 때 가장 살갑게 대해주던 사람이었다. 타이치가 있어서 학교생활에 적응했다-라는 말이 과장된 것이 아닐 정도로 우리는 가까웠다. 아니 가까웠었다. 이젠 너무 멀리 있으니까.

 

나는 너무 놀라 지켜보는 일 밖에는 할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후회가 된다. 왜 그랬지 왜 그랬어 왜 그랬냐 왜 왜 왜 왜. 밑도 끝도 없이 자신을 물고 늘어지는 질문에 괴로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좀 더 빨리 내가 대처를 했다면 그랬다면 너는 살 수 있었을까. 그렇지만 세상은 잔인했다. 자책하고 또 자책해도 너는 더 이상 돌아올 수 없었다.

 

 평소보다 그런 생각이 많이 들어 집에 들어가자마자 욕실로 발걸음을 향했다. 주 목적은 샤워였으나 거울 옆에 붙어있는 거미를 보니 거미를 무진장 싫어하던 죽은 내 친구 카와니시 타이치가 떠올랐다. 그래, 내 친구는 죽었는데 너는 살아 있구나. 아무상관 없는 거미였지만 괜스래 괘씸한 기분이 들어 샤워  기로 물을 마구 뿌려댔다.

거미를 죽였다.
죽은 친구를 떠올리게 해 날 괴롭히던 거미였다. 화장실에 갈 때 나를 신경 쓰이게 한 '그것'은 오늘 학교에 다녀온 후 마주했다. 욱하는 성격 때문에 샤워기로 거미에게 물을 마구 뿌리곤 정신을 차려보니 거미는 이미 우리 집을 떠난 뒤였다. 정신을 차리고 샤워를 끝마친 후 방으로 들어와 헤집어진 이부자리 사이로 들어가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려 덮은 뒤 기도를 했다.

[ 좋은 곳으로 갔길, 더 예쁜 무언가로 태어나길 ]

 

이불 속에서 맞잡은, 시원하던 두 손 사이로 땀이 송글 송글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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